[한잔레터] 🍍: 내 비밀을 아르켜줄게 ?

고량주에 담긴 파인애플 향의 비밀

2025. 2. 28.

2025. 02. 28 | 한잔레터 제 21호 | 지난 호 보기

오늘의 한잔

🍍: 내 비밀을 아르켜줄게 ⁉️

고량주에 담긴 파인애플 향의 비밀

님, 고량주 좋아하시나요? 중식당에 가면 자주 볼 수 있는 고량주, 자극적이고 기름진 안주와 참 잘 어울려 많이 찾는 술 중 하나인데요.

중국 백주의 대표주자인 고량주는 악명 높아보이는 이름과 50도에 달하는 도수에 맞지 않게 달콤한 파인애플 향이 맴돌아 더욱 매력적인 술이에요.

그런데.. 궁금하지 않으세요? 이름도, 색깔도 파인애플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데, 어째서 잔을 기울일 때마다 열대과일 같은 달콤한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걸까요?

오늘은 에디터가 고량주에 담긴 비밀을 살짝 풀어볼게요!

고량주 : 파인애플은 1도 안 들었습니다.

에디터는 늘 궁금했습니다. 고량주에서는 왜 파인애플 향이 날까? 하지만 고량주를 마시고 나면 잔뜩 취해버려 연구할 수 없었죠...

그래서 오늘! 한잔레터 구독자 여러분을 생각하며 정신줄 단단히 붙잡고 고량주에 대해 파헤쳐보기 시작했답니다.

그리고 알게 된 첫 번째 사실은...

고량주에는 파인애플🍍이 1도 들어가지 않는다!

🧪 수수에서 술이 되기까지

고량주의 핵심 재료는 수수 (Sorghum). 알코올을 만들려면 먼저 당화(糖化, saccharification) 과정을 거쳐야 해요. 쉽게 말해, 전분을 효소로 분해해 당으로 변환하는 과정인데요.

이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주모(麴, Qu) 라는 발효균이에요! 발효균이 포도당을 만들면 이젠 효모(Yeast)가 등장할 차례, 효모는 당을 분해해 에탄올(C2H5OH)을 생성해요.

발효를 통해 알코올을 가지게 된 고량주, 그런데.. 아직 파인애플의 향기는 느껴지지 않아요. 오히려 뜻밖의 냄새가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 : 잠깐 지나갈게요

발효가 계속되면서 '어떤 물질'이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 바로 '카프로산(Caproic acid, C6H12O2)'인데요.

문제는, 이게 냄새가 좀 심각합니다 🤢
카프로산에 대해 알아보면, 염소 우리 냄새, 또는 다른 가축 냄새가 난다고 해요.

그럼.. 고량주에서도 염소 냄새가 나야 하는 거 아닐까 걱정이 되기 시작하는데요.

다행히도, 여기서 과학의 마법이 한 번 더 펼쳐집니다!🌈

고약한 냄새의 카프로산이, 에탄올(술의 주성분)과 만나면서 완전히 다른 향기로 변신하게 돼요.

🍍 파인애플 등장!

앞서 말씀드린 마법은 바로 에스터화 반응(Esterification)! 에스터는 카프로산과 알코올이 만나 생기는 화합물인데요, 이러한 과정을 에스터화 반응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고량주 속에서 탄생한 ✨ 에틸 카프로에이트(Ethyl Caproate, C8H16O2) ✨ 이 성분이 바로 향긋한 열대 과일 향을 내는 본체였던 것이죠!

염소 우리 냄새가 나던 카프로산이 알코올과 결합하는 순간 완전히 새로운 향기로 변하게 된 거죠.

그리고 한가지 더 놀라운 사실! 이런 에스터들은 여러 종류가 존재하기 때문에, 과일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술에서 파인애플뿐만 아니라 사과, 배, 복숭아 같은 향도 함께 느껴질 수 있는 것이랍니다!

🤔 C8H16O2, 어쩌면 조금 까다로울지도 ?

에틸 카프로에이트가 많이 생성될지 적게 생성될지는 발효 조건에 따라 달라지게 되는데요. 역시 술을 빚는 건 오랜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답니다!

✅ 온도와 습도

고량주는 고온 발효(40~50°C) 환경에서 만들어지는데,
이때 높은 온도는 카프로산을 에틸 카프로에이트로 변환하는 반응을 촉진해요.

✅ 미생물(효모 & 박테리아)

특히, 바실러스(Bacillus)와 락토바실러스(Lactobacillus) 박테리아가 많을수록 지방산이 잘 분해되고,
이 과정에서 더 많은 카프로산이 생성, 더 많은 에틸 카프로에이트가 형성된다고 해요.

시간이 지날 수록 깊어지는 향 🌬️

여기서 끝이라면 섭섭하죠! 고량주는 숙성(Aging) 과정에서 향이 더욱 깊어진답니다. 숙성 중에 더 많은 에스터가 생성되고, 잡내가 옅어지면서 더욱 풍부한 과일향이 만들어지게 되는 거죠.
그렇게 숙성을 거치다 보면 우리가 아는 그 부드럽고 깊은 파인애플 향의 고량주가 완성된답니다!

이제 친구들과 고량주를 마실 때, 카프로산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면 어떨까요?

입안에서 피어오르는 과일 향, 그 속에는 시간과 발효가 만들어낸 치밀한 화학 반응이 숨어 있답니다!

🍶 술 맛의 비밀, 조금은 알 것 같아!

이 밖에도 다양한 전통주에는 다양한 에스터(ester)와 알코올(alcohol), 유기산(organic acid)이 함께 존재해 여러가지 향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요.

에틸 카프로에이트 C8H16O2 파인애플, 열대과일 🍍

에틸 아세테이트 C4H8O2 사과, 배 🍏

부틸 카프로에이트 C10H20O2 코코넛 🥥

에틸 락테이트 C5H10O3 달콤한 우유 🥛

위와 같이 다양한 에스터들이 존재하고, 각기 다른 환경에서의 발효와 숙성을 거치기 때문에 향료를 첨가하지 않고도 엄청나게 다양한 향을 가질 수 있는 것이랍니다!

전통주 속 파인애플 찾기

미음 소주를 만드는 다드림영농조합법인은 전라북도 완주에서 쌀과 곶감을 생산하는 청년농부와 한국농수산대학교 식품가공학을 전공한 친구들이 함께 모여 있어요.

쌀을 음미한다는 뜻의 '미음'은, 처음 즐기는 사람도 무난하게 마실 수 있는 증류식 소주를 만들고자 하여 탄생하게 되었답니다!

지역 농가와의 상생을 위해 청년농부가 직접 재배한 신동진쌀을 사용했고, 전통적인 발효 과정만을 통해 은은하면서도 고량주 같은 향기를 만들어낸 것이 특징이에요!

얼마전 에디터도 직접 마셔본 미음소주! 연태고량주를 연상케하는 은은한 파인애플 향과 더불어 부담스럽지 않은 도수로 가벼운 목넘김까지 느낄 수 있었어요. 무엇보다도 기타 첨가물 없이 쌀을 증류하여 만든 소주임에도 수수로 만든 고량주의 향기가 난다는 점이 새롭게 다가왔답니다🍍

Tasting Note

☑️ 달콤함 ⭐⭐

☑️ 새콤함

☑️ 고소함⭐

☑️ 파인애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