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잔레터]💀 술은 써야 진짜다?

달콤한 술에 대한 오해와 진실

2025. 10. 31.

44년지기 포도🍇, 30년지기 와인🍷, 늘샘농원

2025. 10. 31 | 한잔레터 제 53호 | 지난 호 보기

오늘의 한잔

💀 술은 써야 진짜다?

달콤한 술에 대한 오해와 진실

님, '술' 하면 어떤 맛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깔끔하고 쌉쌀한’ 한 모금이 어른이 된 증표처럼 여겨지진 않았나요?

요즘 우리는 ‘드라이’, ‘깔끔함’, ‘쓴맛’을 세련된 술의 맛으로 여기는 것 같아요. 하지만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보면, 꿀과 엿기름으로 단맛을 더한 술이 귀하고 품격 있는 술로 여겨지는 시절도 있었답니다.

조선시대 문헌에는 꿀(淸蜜)을 진상품으로 올린 기록이 수차례 등장하는데요. 궁에서도 꿀을 포함한 술, 음식이 제례와 잔치에 활용되었다고 해요.

단맛은 축하의 맛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왕실과 사대부가의 제례주나 잔칫주에 꿀이 자주 들어갔어요. 《조선왕조실록》에는 꿀(淸蜜)을 진상하거나 혼례·제사 음식에 쓰는 기록이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동의보감』에도 “술의 단맛은 기운을 순하게 하고 마음을 즐겁게 한다(酒之甘者順氣悅心)”고 적혀 있어요.

즉, 단맛은 ‘몸을 보하고 기분을 좋게 하는 맛’으로 여겨진 거죠. 꿀, 엿기름, 조청 등은 귀한 재료였기 때문에 이 재료로 단맛을 낸 술은 축하와 감사의 자리에 올릴 수 있었죠.

📜 세종 32년(1450) 5월 7일

“음식을 진상하는 자가 꿀과 조청으로 술과 과자를 만들었다.”
출처: 《세종실록》 32권, 세종 32년 5월 7일조

📜 성종 7년(1476) 9월

“궁중에서 꿀과 찹쌀로 단술(甘酒)을 빚어 진상하였다.”
→ ‘감주(甘酒)’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부분. 당시 ‘감주’는 꿀·엿기름·찹쌀을 사용한 약주형 술.
출처: 《성종실록》 87권, 성종 7년 9월 조 (국사편찬위원회 원문 DB)

📜 중종 13년(1518)

“상에 올릴 술은 반드시 감주를 쓰되, 신선한 꿀을 써서 빚게 하라.”
출처: 《중종실록》 29권, 중종 13년 9월 10일

📘 『국조오례의』(1474)

향음주례(鄕飮酒禮) 절차에 등장하는 ‘감주(甘酒)’는 제사 후 음복주나 잔치의 첫 잔으로 사용됨.
감주는 일반 약주보다 단맛이 나는 술로, 당시 양반가·궁중 연향 모두에 쓰임.

📘 『진연의궤(進宴儀軌)』

(예: 영조·순조대 진연의궤)
연회에서 제공된 주류 중 ‘감주(甘酒)’ ‘약주(藥酒)’가 함께 등장하며,
‘감주’의 주재료는 꿀·엿기름·찹쌀로 기록됨.
→ 왕의 탄일·세자 책봉 등 경사 연향에서 실제로 사용된 단술.

📚 『동의보감』「탕액편」

“酒之甘者順氣悅心(술의 단맛은 기운을 순하게 하고 마음을 즐겁게 한다)”
라고 되어 있음.
즉, 단술은 단순히 맛의 문제를 넘어 ‘건강과 기쁨’을 상징하는 약재적 술로 여겨졌음.

단맛이 사라진 이유

하지만 근대 이후 술맛의 기준은 크게 바뀌었어요. 1900년대 초, 일본식 청주(淸酒)가 들어오면서 ‘맑고 단맛이 적은 술’이 고급이라는 인식이 퍼졌고,
1960~70년대 막걸리 산업화 과정에서 ‘깔끔하고 덜 단 술’을 선호하는 소비 패턴이 형성되었어요.

또한 서양 와인의 ‘드라이(dry)’ 문화가 수입되면서 단맛이 있는 술은 ‘가볍고 입문자용’이라는 인식이 확산됐죠. 이 시기부터 “쓴맛 = 어른의 취향, 단맛 = 초보의 선택”이라는 구분이 자리 잡았어요.

그렇다면 우리가 다시 ‘달콤함’을 바라볼 방법은 없을까요?

흥미롭게도 최근 전통주 소비 트렌드에서는 ‘과실 향’, ‘부드러운 단맛’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목소리도 늘고 있어요.

달콤함이 단지 입문자의 선택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맛을 솔직히 고르는 선택”이 될 수 있다는 거죠!

농촌진흥청의 2021년 전통주 소비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소비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맛은 ‘과실 향’과 ‘부드러운 단맛’으로 나타났습니다.
유자, 복숭아, 배, 매실 등 달콤한 향과 산뜻한 단맛이 들어간 전통주가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죠.

과거에는 단맛이 ‘귀한 자리의 맛’이었다면, 지금은 ‘일상 속 위로의 맛’으로 돌아오고 있는 셈이에요.